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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oyu” trip.

お知らせ News

나라(奈良)의 다도와 다이조인 정원

1일본 고대로부터의 신앙 (해와 달, 아침과 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이고 국토의 75%가 산지인 일본에서는 자연은 생명을 위협하는 극복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삶에 혜택을 주는 매우 가까운 존재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과 강, 폭포, 그리고 거석과 같은 자연을 신으로 섬기며 숭상하게 되었다. 특히 하늘에서 빛나는 태양은 만물에 은혜를 베푸는 존재로 여겨 각별히 숭배되었다. 황실의 조상신은 태양신 아마테라스오카미(天照大御神) 신이다. 한편 밤의 어둠을 밝히는 달 또한 태양 다음으로 특별한 존재로서 추앙되었다. 산 그 자체를 신으로서 숭배하는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 신사의 미카사야마(三笠山) 산은 나라시의 동쪽에 위치하여 어디서나 바라볼 수 있으며, 그 산정에서부터 해와 달이 하늘로 떠오르기 때문에 8세기부터 특별시되고 있다. 견당사(遣唐使)로 장안(長安, 지금의 중국 산시성 시안)으로 건너가, 그 땅에서 객사한 아베노 나카마로(阿倍仲麻呂)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하늘을 우러러보며, 같은 달이 고향인 미카사야마 산에도 떠 있음을 노래로 읊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2,불교 전래, 신불습합(일본 고유의 신과 불교가 결합된 신앙) 과 나라(奈良)

자연 숭배를 기원하는 신도(神道)는, 자연적으로 생긴 신앙 형태이기 때문에 명확한 교리를 갖고 있지 않았다. 한편 6세기 중반부터 도래인들에 의해 중국과 한반도로부터 유입된 불교가 538년 백제로부터 정식으로 전해지면서, 각지에 사찰이 건립되었다. 더 나아가 불교에 깊이 귀의한 쇼토쿠 태자(聖徳太子)가 등장하면서 불교는 국가를 지키는 역할을 했다. 이윽고 8세기 경에는, 고래의 신기신앙(神祇信仰:하늘과 땅의 신 등)이 불교의 교리를 받아들게 되면서 보다 존재감을 높여 갔다. 그 과정에서 일본의 신은, 실은 외래의 부처가 일본에 맞는 모습으로 변화하여 강림했다는 설(本地垂迹説)이 유포되어 갔다. 가스가타이샤 신사에는 고후쿠지 절이, 도다이지 절에는 다무케야마하치만구 신궁, 미와야마 산에는 다이고린지 절 등이 있는데, 이처럼 대표적인 신사에는 신궁절이, 그리고 절에는 진수사(鎮守社)가 일체가 되어 신앙을 지켜갔다.

 

3쇼소인(正倉院) 보물과 장인의 수복기술의 전승

752년 국가의 번영과 안녕을 위해, 쇼무 천황이 총력을 기울여 건립한 것이 도다이지 절의 루샤나불상(盧舎那仏像, 나라의 대불)이다. 그 개안공양 시에 천황은 실크로드를 통해 건너온 여러 가지 진귀한 보물을 대불에 헌납했다. 또한 천황이 붕어한 후, 고묘 황후는 천황의 명복을 빌며 그의 애장품을 대불에 헌납했다. 그 당시의 기술과 고급스러움을 다한 제1급 공예품 등, 천황의 애장품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 쇼소인이다. 그 보물들은 역대 천황들의 봉인하에 1300년 동안 엄중히 지켜져 왔으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그 시대를 대표하는 장인들에 의해 적절히 수복되어 전해지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장인들은 고대의 높은 기술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자신의 기술로서 흡수해 갔다. 상아 세공과 같은 과거 당나라에서 융성했다가 사라지게 된 기술이 지금도 나라(奈良)에서 전승되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4 노가쿠(能楽)와 다도(茶道)의 발상 경위

일본의 대표적인 가면극인 노(能)나 다도는 모두 무로마치(室町) 시대의 나라 지역과 매우 연고가 깊은 예능예술이다.
노가쿠의 기원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알 수 없으나, 원래 7세기에 대륙으로부터 전해진 기악과 나라 시대에 당나라에서 들어온 산가쿠(散楽)가 그 기원이라고 생각된다. 산가쿠가 일본 토착 예능과 융합되어 사루가쿠(猿楽,申樂)가 되었고, 그것이 민중 속으로 스며들면서 사찰에서의 봉납예능으로 자리 잡았다. 중세 시에는 고후쿠지(興福寺) 절이나 가스가샤(春日社) 신사 등, 유력한 사찰들은 사루가쿠단을 전속으로 두고, 야마토사루가쿠시자(大和猿楽四座)로 칭했다. 그 가운데 하나이던

유자키좌(結崎座)에 소속되었던 인물이, 후에 노가쿠의 시조라고 하여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満)에게 그 재주를 깊이 사랑받았던 간아미(観阿弥)와 제아미(世阿弥)의 부자이다. 그 후, 그 이외의 단체도 현재의 노가쿠의 대표적인 유파인 곤고류(金剛流), 호쇼류(宝生流), 곤파루류(金春流)의 기원이 되었다.

다도 역시 8세기에 당나라로부터  헤이조쿄(平城京)로 전해진, 차를 마시는 풍습에서 기원되었다. 그리고 13세기 경 좌선과 함께 말차의 다도법이 당나라의 차도구와 함께 전해지면서 무가와 지식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무로마치 시대의 아시카가 장군 가문은 당나라의 차도구를 진열해 놓은 다실에서 차를 마시는 것을 좋아했다. 한편 서민들 사이에서도 사찰 문전 등에서 한 잔에 일전씩 하는 말차를 즐겨 마시는 풍습이 유행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통합해 독자적인 미의식으로 간소하게 볼 만한 도구 몇 가지만을 사용하여, 손님이 보는 앞에서 주인이 차를 끓여 대접하는 ‘와비차’형식을 창시한 것이 나라(奈良)의 정토승인 주코(珠光)이며, 그 흐름을 완성시킨 것이 나라에서 가까운 사카이에서 태어난 센노리큐(千利休)이다.

5 다이조인몬제키(大乗院門跡) 사원에 대하여 

다이조인몬제키는 나라지역에서 가장 유력한 불교사원인 고후쿠지(興福寺) 절의 주지가 거주하는 특별한 사원으로서 1087년에 창건되었다. 이치조인(一乗院) 사원과 함께 황족과 관직자의 집안 그리고 장군가의 자제들이 대대로 원주(院主)를 지내던 사원으로, 말하자면 나라지역의 종교와 정치의 중추적인 존재였다고 할 수 있다. 15세기 중반, 당시 원주이던 진손(尋尊)이 폭동으로 인해 황폐해진 땅을 부흥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건물의 재건과 정원을 조성했다. 진손은 부흥을 위한 넓은 부지를 확보하기 위해 현재의 땅을 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콘도 법당과 오층탑 등이 있는 고후쿠지 절의 중심지에서 조금 떨어진 장소에 위치하고 있다. 메이지 시대의 불교배척운동으로 인한 혼란 속에서 폐절되어, 현재 부지는 나라호텔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정원의 일부만이 부흥되어 구 다이조인 정원으로 국가의 명승지가 되었다.

6 다이조인 정원

다이조인 정원의 서쪽에는 전각을 세우고 동쪽에는 연못을 배치하였으며, 연못 안에는 섬을 조성했는데, 이것은 헤이안(平安) 시대부터 유행하던 귀족 저택의 정원 양식에 따른 지천 회유식 정원이다. 이는 역대 주지들이 황족이나 관직자 집안에서 배출되고 있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

대장군이던 아시카가 요시마사 를 모시던 측근이자 당시 유일한 정원사로 알려진 젠아미(善阿弥) 부자가 정원을  조성했는데, 그 훌륭함으로 인해 남도(南都) 제일의 명승 정원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부흥 이후, 일본을 대표하는 귀족들이 정원에 모여 노가쿠를 즐겼다고  하는 내용이 진손이 기록한 ‘다이조인지샤조지키(大乗院寺社雑事記)’에 적혀 있다. 또한 정원 내에는 에도(江戸) 시대 중기, 센노리큐의 제자였던 무장이자  다도인인 후루타 오리베(古田織部)의 취향으로, 다실 ‘간스이테(含翠亭)(핫소안(八窓庵)으로도 불림:나라국립박물관내에 현존’가 설치되어 다도회도 자주 열렸다. 이 다실은 고후쿠지 절 지겐인(慈眼院)의 로쿠소안(六窓庵)(도쿄국립박물관 내에 현존)과  도다이지(東大寺) 절 시쇼보(四聖坊)의 오키로쿠(隠岐録; 도쿄로 이건한 후, 전쟁으로 인한 화재로 소실)와 함께 야마토(大和)의 삼대 다실로 불리었다.

또한 다이조인의 가신이기도 하며, 주코의 첫제자로 알려진 후루이치 하리마노카미초인(古市播磨守澄胤)이 다이조인을 중심으로 나라 지역에서 무로마치 문화 살롱을 형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7나라에서 숙박하면 좋은 점

 

아직 해가 뜨기 전인 이른 아침에 고후쿠지 절의 가람에 서면, 동쪽 산기슭에서부터 서서히 빛이 밝아지며 미카사야마 산 부근에 아침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빛은 경내에 재건된 주콘도 법당의 주홍색 기둥을 밝히며 장엄한 경치를 펼쳐 보여준다. 그 경치는 1300년 전에 쇼무 천황이나 고묘 황후 등 덴표(天平) 시대의 사람들이 보았던 경치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마음속에 조용한 감동의 물결이 일렁인다. 그 후 인적 없는 경내에서 나와 가스가타이샤(春日大社) 신사에 가서 참배를 한 후, 와카쿠사야마(若草山) 산자락을 따라 도다이지 절의 경내로 들어가, 산가쓰도(三月堂) 법당을 거쳐 니가쓰도(二月堂) 법당의 무대 위에서 나라의 시가지를 내려다 보면 어느새 해는 높이 떠올라 있다. 인적이 드문 이른 아침에 이러한 장소를 산책할 수 있는 것과 나라의 역사와 일체화되어 보는 다시 없는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것은 나라에서 숙박을 해야만이 가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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